‘짝사랑의 추억’
▲연두흠/ 수필가
딸아이는 카세트테이프를 모른다 했다. mp3 세대도 아니라는 말을 들었을 땐 솔직히 “아~내가 연식이 참 오래 되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겸연쩍어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 “그럼 오토리버스도 모르겠네...”였다.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만 하는 아빠의 말에 딸아이는 유튜브로 음악을 듣는다 했다.
“아 그렇지...유튜브”
유튜브 shorts 영상을 보다가 흰 백발의 할아버지가 잔디 위에서 기교 없는 맑은 음색으로 이야기하듯 부르는 노래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중학생 때 카세트테이프가 늘어날 정도로 듣고 또 듣던 김성호 씨의 ’회상’이라는 노래였다. 오랜만에 ‘당신은 천사와 커피를 마셔본 적이 있습니까’라는 노래도 검색해 번갈아 가며 그렇게 몇 시간을 들었던 것 같다.
노래는 그 옛날 타임캡슐에 넣어 놓고 잊고 살았던...짧은 스포츠머리, 까무잡잡한 피부, 눈이 똥그랬던, 개구진 중학생...어린시절 내 ‘짝사랑의 추억’을 소환시키기에 충분했다.
할머니와 여동생은 이미 잠들었다.
연합고사 준비로 자정을 넘길 때가 많았지만 사실 공부는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연습장을 조금 찢어 이빨로 꼭꼭 씹어 단단하게 만든 뒤 카세트테이프 위쪽에 뚫려있는 네모난 구멍에 맞게 집어넣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해야지 녹음이 가능한 테이프가 되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며 듣는 라디오의 신청곡 중에 혹시 내가 듣고 싶은 노래가 나오면 바로 녹음을 했다.
고백 한번 못해 본 나의 짝사랑을 대변해 주는 노래가 좋았고, 그 당시 노래 가사가 대부분 시처럼 서정적이었고, 멜로디 또한 감성적이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노래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 날을 잊을 수 없다.
연습장 위에 떨어진 짝사랑에 대한 눈물...기억하고 싶었고 간직하고 싶었다. 손에 연필을 잡고 연습장에 공부의 흔적을 남겨야 했지만 공부는 하지 않고 연습장 위에 떨어진 눈물을 커트 칼로 자를 대고 정성스럽게 잘랐다.
다음 날 아침 등굣길에 문구점을 들러 코팅을 부탁했더니 문구점 아줌마는 이상하다는 듯 나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코팅지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셨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물 테두리가 보이지 않았다. 소중하게 담은 짝사랑의 추억을 화석 속 공룡처럼 오래오래 책갈피 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싶어 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티 없이 맑고 풋풋했던 그때의 나를 꼬~옥하며 한 번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
잃어버린 책갈피를 어디에 뒀는지 잊고 살아왔는데...음악을 들으며 오늘 다시 찾은 것 같아 기뻤다.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한 친구의 도움으로 전화 통화가 되었는데 뜻밖에도 그녀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친구는 나에게 수화기를 건넸지만 소중한 추억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에 수화기를 건네받지 않았다. 인생을 살면서 ‘잘했다’라고 스스로를 칭찬해 주고 싶은 몇 안 되는 순간이라 생각된다. 미완성인 작품이 더 가치가 있을 것 같았고, 아이가 꾸는 꿈이, 꿈을 이룬 어른보다 더 값어치가 있을 것만 같았으며 보잘 것 없었던 나의 중학교 학창 시절을 보석처럼 반짝이게 했던 아름다운 추억을 책갈피 속에 그렇게 간직하고 싶었던 것 같다.
소문에 그녀는 공부를 꽤 잘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난 고백의 조건을 반에서 10등 안으로 정했던 것이다.
‘이번 시험에서 10등 안에 들면 꼭 고백하리라’ 스스로 다짐도 해봤지만 날씨가 추워지는 2학기 기말고사 성적은 꽤나 실망스러웠다. 동굴 속에서 100일간 마늘만 먹던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처럼 나 또한 그 무언가에 초집중하고 싶었다. 무너지는 마음을 추스르고 아픔을 참고 이겨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했던 게 1층 창고에 채워놓은 연탄을 2층 보일러실로 나르는 것이었는데...지금 생각해보면 어째서 연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난 연탄을 나르며 다음 시험은 무조건 10등 안에 들어 그녀에게 멋지게 고백하리라 다짐만 했던 것 같다. 가엾게도 난 고백 한번 못한 채 중학교 3년 내내 보일러실에 연탄을 아주 그냥 꽉꽉 채워놓았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열심히 연탄만 날랐다
성적이 좋지 않아 연탄을 나른다는 풀죽은 나의 모습을 보신 아버지께서는
“인생이 공부가 다가 아니다, 건강하면 돼, 그리고 엿장수라도 너 사업하면 돼~”라고 격려의 말씀도 해 주셨고, 보일러실에 차곡차곡 연탄을 쌓아놓은 나를 칭찬해 주셨다.
편지는 참 많이도 썼던 것 같다. 그저 단 한 번도 건네주지 못했을 뿐이다. 악필이기에 정성껏 그린 글씨가 맘에 들지 않거나 내용이 맘에 들지 않으면 모조리 구겨 휴지통으로 던져 버렸다. 휴지통 주변에 구겨진 편지지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그러다 보면 편지지는 없고 예쁜 편지봉투만 남았다. 난 6살 어린 여동생에게 인심 쓰듯 ‘예쁜 편지봉투’만 주었다. 여동생은 그림을 그리고 가위로 오려 종이 인형을 만들곤 했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고백 한번 못했던 중학교 3년, 그때로 다시 오토리버스 할 순 없지만 ‘옛 짝사랑의 추억’으로 오토리버스 할 수 있어 좋았던 오늘...
답답해 보일 정도로 부끄러움 많았던 학창 시절, 인생에 가장 순수함을 간직하게, 그리고 소중해서 더 아름다웠던 추억을 선물해 준 어딘가에 있을 그녀에게 감사의 마음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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