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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꽃 가득한 산마루에서 ▲민순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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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꽃 가득한 산마루에서


 민순혜수필가


"어머니, 이대로 가시렵니까. 눈을 좀 떠 보세요!"

어머니는 의식이 거의 없으셨다. 숨이 막힐 듯한 잦은 기침이 멎어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전혀 기척이 없으셨다. 나는 병실 밖을 향해 소리쳤다.

"여기요, 우리 어머니가 숨을 안 쉬는 거 같아요!"

나는 불현듯 빛 한줄기 없는 캄캄한 동굴 안에 갇힌 것처럼 두려움이 앞섰다. 의료진이 병실로 뛰어 들어왔다. 담당 의사가 응급처치를 하자 어머니는 간신히 숨을 내 뱉듯이 한숨을 푸우 내쉬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내 입을 꼭 다물고 눈도 꼭 감고 미동 없이 반듯하게 누워계셨다.나는 몇 번이나 어머니 가슴에 손을 대곤 했다. 그때 마다 따뜻한 온기가 손에 전해왔다.

그러다가 지난 6월초, 어머니는 끝내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다. 6남매 중에 둘째 아들과 두 딸이 지켜보는 앞에서 편안히 숨을 거두셨다.

어머니는 노환으로 노인전문병원에 입원해 계시면서도 주기적으로 고비를 힘겹게 지나 오셨다. 우울증을 앓고 계시기에 다른 노인성 질환과는 달랐다. 4년 여 입원해 계시면서 정말 단 하루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던 건 언제 입을 다물지 몰라서였다.입을 다물면 식사는 물론이고 말을 할 수 없어 몸에 상처가 나도 어디가 아프다고 말도 못하고 그저 신음소리만 낼 뿐이니 그것을 그저 바라보고 있어야하는 딸로서는 정말 억장이 무너졌다.

나는 어릴 적에 엄살이 심했었다. 체하거나 감기가 들어서 조금만 아파도 엄마를 내 곁에서 떠나지 못하게 했었다.잠들었다가 깨서 엄마가 옆에 없으면 소리 지르며 투정을 했었으니까.그런데 어머니도 그러셨다.내가 안보이면 눈으로 찾으셨다. 말을 못하고 몸을 못 움직이시니까 눈동자로 찾으려다 어느 때는 하얗게 흰자위만 남기도 했다. 저녁나절 어머니의 흰자위가 먼저 병실 문 앞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하루 온종일 기다리다 지쳐 흰자위가 거무스레해지기도 했다.

그런 어느 날 거짓말처럼 어머니가 숨을 거두시자, 이렇게 가시는데 좀 더 많이 어머니 곁에 있어드리지 못한 것이 한없이 죄송하고 마음이 아팠다.가슴에 못을 박는다 한들 이렇게 아플까. 하긴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평생을 기다림 속에 사셨는지도 모른다.가부장적인 남편에게 순종하며 막 여문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6남매의 뒷바라지에 허리가 휘면서도 어머니는 한 가닥 기다림이 있기에 행복하셨던 거 같다.매일 저녁 된장국을 끓여놓고 외출한 식구들의 귀가를 기다리는 일도 즐거우셨지만,가족이 둥근 상에 빙 둘러앉아 하루 일을 이야기할 때는 어머니의 웃음소리가 제일 크셨다.지금껏 살면서 어머니의 그 큰 웃음소리가 든든한 힘이 되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지난 주 외국에 있던 조카들이 할머니 소식을 뒤늦게 알고 잠시 귀국하여 성묘를 다녀왔다. 조카들은 할머니와의 즐거웠던 일들을 신바람 나서 말하다가도 울먹이며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했다.방학 때 할머니랑 보문산 놀이공원에 갔던 일이며 할머니가 해주시던 새우튀김, 오징어튀김, 야채튀김, 계란케이크, 김밥 말이 등 정말 맛있었다며 음식점에서 사먹어도 할머니가 해주시던 맛이 아니었다고 눈물이 글썽였다.

조카들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머니는 자식인 우리보다도 손주, 손녀 사랑이 더 크셨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가셨지만 이렇듯 어머니의 향기는 우리 가족들 가슴 속에 남아 언제나처럼 우리와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실 것이다.

엄마 삼우제(三虞祭)를 지내고

푸르름이 싱그러운 유월

삼나무 우거진 숲속

매년 이맘때 엄마와

산나물 캐러 걷던 오솔길.

룰루랄라 콧노래 흥얼거리며

함께 걸었을 황톳길을

오늘은 눈물 흩뿌리며 걷는다.

발길 닿은 곳마다 미소짓는

각시붓꽃,노랑무늬붓꽃,부채붓꽃

붓꽃 가득한 산마루에서

엄마는 꽃들과 살며 꽃이 되시겠지.

산 아래 동네를 어루만지는

깊은 향기.

*어머니7주기 기일(忌日)을 앞두고.

민순혜 수필가

대전 출생2010시에로 등단.수필집 내 마음의 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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